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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스토리] 장동건·소지섭 뺨치는 꽃할배들의 눈부신 과거

[enews24 오미정 기자]어느덧 칠순을 넘긴 나이가 됐지만 이들에게도 빛나는 청춘이 있었다. 무릎이 아프다며 걷기 싫다 투정을 부리고, 물통에는 소주가 담겨 있다. 또 눈부신 역사 유적 앞에선 "내 인생에 마지막인 것 같다"며 회한에 젖는다. 봉산탈춤 춤사위도 절로 나온다. tvN '꽃보다 할배'의 네 꽃할배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은 그렇게 시청자들의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흔히들 이런 말을 한다. 생활 배우도 젊었을 때 한가닥을 해야 할 수 있다고. 그렇다. 지금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아버지 할아버지 큰아버지 회장님은 모두 젊은 시절 연예계에서 '한가닥'을 했던 인물들이다.

지금은 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 시청자와 관객을 만나고 있지만, 이들에게도 화려한 주인공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 드라마가 있었고 영화가 있었다. 이들의 역사가 곧 한국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연극의 역사다.

◆ 이순재, 정계까지 진출한 팔순의 노장

이순재의 고향은 이북이다. 1935년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네 살 때 조부모를 따라 서울에 왔다.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도 월남을 했다. 이순재의 가족은 대전에서 비누공장을 운영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연극 공연을 했다. 1956년 한국 최초의 TV 방송인 HLKZ-TV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을 합쳐 200여편이 넘는 작품에서 연기를 펼쳤다. 일일이 다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작품수다.

젊은 시절 그는 젠틀한 외모를 지닌 배우였다. 전형적인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시대를 앞서간 개성이 있었다. 멜로와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넘나들며 연기를 펼쳤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최민수)의 아버지 역할로 출연, 엄격하고 냉정한 아버지상을 보여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06년 ~ 2007년 MBC 일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야동을 즐겨보는 할아버지 한의사로 등장,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tvN '감자별 2013QR3' '꽃할배 수사대' 등을 통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노인 보험 등의 광고 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연기자로서 이순재는 데뷔 이후 이렇다 할 슬럼프도 없이 꾸준히 연기를 보여줬다. 유일한 외도는 정계 진출이다. 이순재는 13대 총선과 14대 총선에 나서 한차례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민정당에서 13대와 14대 중랑구 갑 지역구 공천을 받은 그는 13대에선 낙선, 14대에서는 당선됐다. 하지만 더 이상의 정치 활동은 하지 않았다.

◆ 신구, 유치진에게서 예명 받은 연극인 출신

이순재보다 한 살 어린 신구는 1936년에 태어났다. 본명이 신순기인 그는 극작가 유치진에게 신구라는 예명을 받았다. 연극 무대가 고향인 신구는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했다.

연극배우로 인기를 얻던 신구는 1969년에는 KBS 특채에 합격해 TV 탤런트가 됐다. 드라마 데뷔작은 1972년 '허생전'이다. 연극 배우 출신이라는 점 때문일까. 신구는 전형적인 연기보다 성격파 연기를 주로 보여줬다.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4주 후에 뵙겠습니다', 2002년에 롯데리아 광고에서 '니들이 게맛을 알아?', 2005년 한국야쿠르트 쿠퍼스에서 '토끼 끝이야. 쿠퍼스야! 너나 걱정하세요'라는 말을 유행어로 만들어 많은 세대에게 알려졌다.

100여편에 가까운 작품에 출연한 그는 지금도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지난해 '백년의 유산'에 출연했고, 현재 '신의 선물 - 14일'에 출연 중이다.

상대적으로 전체 작품수가 다른 꽃할배에 비해 적지만 그래도 100여편에 이른다. 커리어 중 연극 작품이 많은 편이다.

◆ 박근형, 젊은 시절부터 카리스마 자랑한 회장님 전문 배우

1940년생 전북 정읍에서 8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연극부로 유명한 휘문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연극을 시작, 1959년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로 처음 연극에 데뷔했다. 1959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1기로 입학했다.

1963년 KBS 공채탤런트 3기로 TV탤런트가 됐다. KBS 공채탤런트였지만 KBS와 MBC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했다. 영화는 1968년 '지하실의 7인'이 첫 작품이다.

박근형의 팬들 가운데에는 1978년 방송된 '청춘의 덫'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근형은 이 드라마에서 노영국으로 출연해 인기를 모았다. 이듬해 만들어진 영화 '청춘의 덫'에서는 성공에 눈이 멀어 헌신적으로 자신을 돌보던 연인을 버리는 남자 동우를 연기했다. '청춘의 덫'은 1997년 심은하 이종원 전광렬 주연의 드라마로 리메이크됐다.

박근형은 젊은 시절 현재의 장동건을 능가하는 조각미남으로 수많은 작품에서 사랑을 받았다. 카리스마 있는 외모는 지금도 여전하다. 덕분에 그는 지금도 회장님, 정치인 등 여전히 카리스마있는 노년의 역할을 주로 맡고 있다. 회장님 전문 배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박근형도 작품 수가 많다. 200편 정도에 이름을 올렸다.

◆ 백일섭, 전쟁영화 주로 출연한 상남자

'꽃보다 할배'의 막내 백일섭은 1944년생이다. 올해로 꼭 70년을 살았다. '꽃보다 할배'에서 언급된대로 영문과(명지대)를 졸업했다. 방송에서 그는 신구와 이순재의 영어 실력에 비해 한참 영어 실력이 뒤져 놀림을 받았다.

1965년 KBS 공채 5기로 데뷔했다. 1969년 신상옥 연출의 영화 '사녀'를 시작으로 영화 배우로도 활동했으나, 1990년대 이후로는 TV드라마에만 주력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백일섭은 카리스마있는 상남자 스타일의 연기를 주로 보여줬다. '연합전선' '돌무지' '나그네 검객 황혼 108관' '사나이 세계' 등 초기 필모그래피는 모두 전쟁영화와 액션영화였다.

동네 아저씨같은 푸근한 이미지는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졌다. 1992년 방송된 '아들과 딸'에서 그는 최수종 김희애의 아버지로 등장해 인기를 모았다. 당시 드라마는 시청률 50%를 넘나들었다.

초기엔 영화작품이 굉장히 많았던 백일섭이지만 지금은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한다. '오작교 형제들' '더 이상은 못 참아' '결혼의 여신' 등에 출연했다. 150편 가량의 작품수를 자랑한다.

사진=eNEWS DB
오미정 기자 omj0206@enews24.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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