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꽃보다 할배', 망각의 짐꾼 이서진의 햄버거 심리학

 

 

[블로그와] 탁발의 티비 읽기

[미디어스] 꽃보다 할배가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마지막 일정을 보냈다.비록 중도에 스케줄 문제로 신구와 박근형이 먼저 돌아가서 다소 쓸쓸한 그림이 됐지만 10살 차이 맏형과 막내 이순재, 백일섭은 씩씩하게 남은 일정을 소화했다.특히나 마지막 날 하루는 짐꾼 이서진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이순재가 가이드를 자처하고 나선 모습이 보기 좋았다.8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직진본능으로 스위스 거리를 활보하는 이순재의 모습은 결코 노인이 아니었다.

물론 이서진 없는 관광은 역시나 힘들었다.게다가 지도를 숙소에 놓고 오는 바람에 멀지 않은 한식당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다른 호텔을 찾아 지도를 구할 수 있어 이순재의 일일 가이드는 목표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그러나 결국 8시간 만에 이서진의 자유시간은 강제 종료될 수밖에는 없었다.참고 참던 이순재가 마침내 나영석 PD를 시켜 이서진을 부르게 했던 것.

비록 온전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이서진은 그 시간 동안 유럽에 와서 처음으로 짐꾼의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서진의 여행은 비로소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자유를 얻은 이서진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정크푸드의 대명사 햄버거. 항상 할배들의 취향에 따라 주문했을 뿐 식당은 물론 메뉴 선정에도 자유가 없었다.물론 강요한 것이 아니라 이서진 스스로 자유를 포기했을 뿐이지만 큼지막한 햄버거를 베어무는 이서진의 얼굴에는 다시 행복과 만족의 보조개가 피어올랐다.

웃고는 있지만 어쩐지 눈물만큼 짠한 미소가 아닐까 싶다.햄버거 하나의 자유, 햄버거 하나의 자기 의지. 그렇게 이서진은 햄버거를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토록 행복해 했다.국내 최고스타가 고작 햄버거 하나에 이렇게나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은 이것이 꽃할배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서진의 햄버거에는 메뉴선택의 자유를 잃은 국민짐꾼의 심리학이 숨어 있었다.바로 망각이다.

햄버거가 준 자유의 느낌이 그만 지난 8일의 고단함을 잊게 했나 모를 일이다.9박10일에 8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마지막 날 주어진 자유는 여행 내내 다시는 하지 않겠다던 다음 여행에 대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했던 것 같다.절대 다시는 하지 않겠다면서도 가이드니 요리사니 조건을 말하는 것이 그렇다.아니면 어느새 이서진은 할배들의 짐꾼 역할에 중독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한식이 지긋지긋하다는 이서진도 아마도 또래나 후배들과 여행을 왔다면 마지막 날에 햄버거가 간절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아마도 한식의 그리움에 몸서리를 쳤을지 모른다.사실 해외여행에 가장 불리한 민족이 한국인일 것이다.특유의 매운맛의 중독은 해외에 나가면 금단현상이 무척 심하다.해외에 나가서 왜 한식을 먹느냐며 현지식을 주장하던 사람일지라도 한식 금단현상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 금단현상을 겪는 것도 어찌 보면 해외여행의 묘미 중 하나일 수 있다.그렇게 견디고 견디다가 아껴뒀던 컵라면 하나를 먹든가 아니면 한식당을 찾는 것이 해외여행의 아주 큰 행복인 탓이다.그렇지만 할배들에게 메뉴결정권이 독점됐던 지난 8일간의 여행에서 이서진은 그 금단현상을 겪을 일이 없었다.그러니 거꾸로 햄버거나 현지 음식이 간절해진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이미 다 알고 있다시피 이서진은 이후 다시 꽃할배들과 함께 대만여행도 함께했다.유럽에서 돌아온 후 꽃할배와 자신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계산 이전에 유럽여행 마지막 날 누렸던 8시간의 자유와 햄버거 하나의 행복 때문에 이미 또 고생해도 좋다는 넉넉한 마음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망각의 짐꾼 이서진은 처음에는 남에게 속아서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에게 속아서 다시 꽃할배들의 다음 짐꾼을 예약하고 있었다.햄버거 하나에 흔들린 국민짐꾼의 순박함도 좋지 않은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 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탁발 treeinus@hanmail.net

Rec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