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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우산 쓴 드라마…'꽃누나' 나영석의 '다른' 연출

 

[OSEN=윤가이 기자] 고장 난 우산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우산으로 둔갑하고 김희애와 이승기의 우여곡절 빗속 재회도 순간 드라마 속 명장면이 된다. 여기는 나영석 월드다.

tvN 배낭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누나’가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의 깨알 같은 연출로 새로운 웃음과 감동을 안기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의 탈을 쓴 ‘꽃보다 누나’는 회를 더할수록 재미를 넘어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깊이까지 자랑한다. 이런 예능이 어디 흔하랴. 힘든 여정 속에서, 함께 지지고 볶는 그 무리 속에서 시청자들은 내 모습을 발견하고 가족과 친구까지 떠올리게 된다.

3일 방송된 ‘꽃보다 누나’에서는 해안도시 스플리트를 배경으로 여행 중반에 들어선 멤버들의 희비가 그려졌다. 열흘간의 크로아티아 종단 일주에서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등 나이든 누나들은 슬슬 지치고 있었다. 반면 짐짝 취급받던 이승기는 하루가 더할수록 똑똑한 짐꾼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날 백미는 여행 중 스트레스에 지친 김희애가 하루 종일 멤버들과 떨어져 단독 행동을 하다가 이를 걱정한 짐꾼 이승기와 재회한 장면. 예민한 성격이지만 티를 내지 않던 김희애는 여행 중반에 들어서자 남모를 위염과 심리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래서 이날 그는 홀로 떨어져 도시 곳곳을 누볐다. 그러나 갑자기 폭우가 퍼부었고 하필 산에 올랐던 김희애와 VJ 등 스태프 몇 명이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시각 이승기는 하루 종일 떨어져 지낸 김희애가 걱정돼 전전긍긍하고 있다. 힘들어하는 누나의 의중을 읽고 있던 그는 막내지만 남자답게 누나를 생각하며 수시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김희애는 응답이 없었고 결국 해가 지고 폭우까지 쏟아지는 상황이 되자 이승기의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라며 우산 하나 달랑 들고 김희애를 마중나간 이승기는 일명 ‘식인우산’과 사투를 벌이면서 길거리를 쏘다녔다.

뒤늦게 이승기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알게 된 김희애도 서둘러 산에서 내려와 결국 광장에서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이승기와 극적 재회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르며 마치 연인의 재회 순간처럼 애틋하고 아름다운 포옹을 나눴다. 그 순간 이승기와 김희애는 나이차 입장차를 넘어서 오롯이 인간애로 뜨겁게 마주한 느낌. 나 PD등 제작진은 이 장면에서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를 BGM으로 삽입하고 깨알 같은 자막을 배치하며 감동을 높였다.

그리고 한 우산 속에서 팔짱을 낀 채 마치 신혼부부 같은 포스를 풍기며 숙소로 돌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종일 반복된 곡절과 위기를 지나 친구로, 식구로 다시 하나가 된 ‘꽃누나’의 이야기다.

이는 나 PD와 이우정 작가가 탁월한 크리에이터란 사실을 방증하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다. 고장이 난 우산을 식인 우산으로 둔갑시켜 웃음 포인트를 잡거나 김희애의 방황과 이승기의 착한 마음을 버무려 만들어 낸 드라마틱한 재회의 순간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issu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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